수포자도 즐기는 보드게임에 수학이!

2025. 3. 1. 00:05BoardGame - 놀이문화/보드게임 vs 보드게임

[머니투데이 테크M 편집부 ]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기계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만물은 입자와 운동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를 수학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수학은 단순히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라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데카르트의 이 같은 세계관을 추종하고 더욱 확장한 사람이 뉴턴이다. 데카르트의 운동 개념이 힘에서 기인한다고 확신한 뉴턴은 힘의 수학적 표현을 찾아내 미적분학을 만드는 동시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데카르트가 없었다면 만유인력 법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만큼 늦게 발견됐을 것이다.

서양에서 발전해 온 수학은 가정(hypothesis)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이른 바 ‘증명’을 중요하게 여겼다. 증명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란 우리속담처럼 어떤 원인 때문에 결과가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수학적 장치다. 증명이 확립되면 원인이 같으면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과학적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증명의 개념은 실험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된 공장의 생산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불량품이 나오면 중간에 어떤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이처럼 수학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뿌리를 중시하는 우리 조상들의 가계도는 일종의 트리(tree)라는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다. 가계도를 보면 모든 자식은 하나의 부모만 존재한다. 트리에서 보듯이, 모든 점 위에는 오직 하나의 선만 그어져 있다. 이 트리들이 모여 숲(forest)을이룬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결국 커다란 숲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수학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게임에도 응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게임으로 유명한 보드게임‘ 도블(Dobble)’은 55장의 동그란 카드로 이뤄져 있다. 카드마다 8개의 그림이 있는데 그림의 종류는 눈송이, 고양이, 하트, 거미줄, 물음표, 이글루 등 총 57개다. 57개의 그림으로 57장의 카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는 55장의 카드가 들어있다. 게임의 규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아무나 딜러(Dealer)를 한 명 정해, 게임 참가자들에게 카드가 보이지 않게 한 장씩 나눠준다.

2. 나머지 카드는 테이블 가운데 카드 그림이 보이도록 둔다.

3. 시작 소리와 함께 동시에 자기 카드를 공개한다.자신이 가진 카드에 테이블 가운데 놓은 맨 위 카드와 같은 그림이 있으면 그 모양의 이름을 재빨리 외치고 가져가면 된다. 가져간 카드는 자신의 카드 위에 올려놓는다.

4. 카드 더미가 다 없어질 때까지 게임을 해서 카드가 제일 많은 사람이 이긴다.


이 규칙에서‘ 가운데 놓은 맨 위 카드와 같은 그림이 있으면’이란 말을 다시 따져보자. 도블의 놀라운 특징은 어떤 카드 두 개를 비교해도 한 개는 꼭 같은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이 55장의 카드에는 총 57개의 그림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 57개의 그림을 8개씩 나눠 카드에 배열하고 임의의 두 카드가 정확히 하나의 그림만 겹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도블에 숨겨진 수학적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 위해 좀 간단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7명의 사람이 있다. 이 사람들로팀원이 3명인 여러 개의 팀을 만들려고 한다. 어떤 두 팀을 택해도 한 명은 두 팀에 동시에 속하도록 해야 한다. 또 임의의 두 사람은 정확히 한 팀에 속한다고 하자. 그러면 몇 개의 팀이 필요할까?

정답은 7개다. 이것은 ‘파노 평면(Fano plane)’을 응용한 것이다. 여기서 각 팀은 3개의 점을 지나는 직선 혹은 중앙의 원으로 표현된다. 고전 기하학의 2차 평면에서는 임의의 서로 다른 두 직선은 한 점에서 만나거나 평행하다. 그런데 파노 평면에서는 서로 다른 두 직선은 반드시 한 점에서 만난다. 그것도 한 점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직선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점을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하자. 파노 평면의 세계에서는 임의의 두 사람은 반드시 하나의 같은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아무리 다른 두 사람이 만나도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 남녀가 만나 공통점에 끌린다면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트리를 생성하고. 결국 우리는 수학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게 아닐까?

다시 도블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도블 게임도 파노 평면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모든 카드에는 8개의 그림이 있고, 아무렇게나 카드 두 개를 선택해 비교하면 반드시 그림 한 개는 똑같다. 카드 설명서에는 없지만 57개 중 임의의 두 그림은 반드시 한 개의 카드에 속하게 돼 있다.

도블은 파노 평면을 일반화한 이른바 n차 사영 평면(projective plane of order n)중 7차 사영 평면에 해당한다. 파노 평면은 2차 사영 평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에 의하면 7차 사영 평면에 필요한 점(여기서는 그림)의 수는 57개다.[n*(n+1)+1=7*8+1=57] 선(여기서는 카드)의 개수도 같은 57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도블 제작사는 두 개의 카드를 생략해 버렸다.

 

없어진 두 개의 카드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외국의 한 블로거가 적어놓은 생략된 카드의 모양을 찾았다. 하나는(카드 A) 드래곤, 눈사람, 얼음, 진저맨, 단풍잎, 물음표, 꽃, 선인장이 있는 카드고 또 하나는(카드 B) 눈사람, 강아지, 눈, 전구, 해골, 느낌표, Stop이 있는 카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카드 B에 8개가 아닌 7개의 그림만 써 있었다. 나는 간단한 수학적 논리를 적용해 수정된 카드(카드 C)를 알아냈다.

이처럼 수학 원리를 이해하면 비슷한 게임을 많이 만들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파노 평면을 이용해 카드의 그림 수가 3개인 도블 게임을 만들어 봤다. 어느 두 카드를 비교해도 한 그림만 겹치게 된다.

세트 게임(SET Game)도 수학을 이용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유전공학자 마샤 팔코(Marsha Falco)가 만들었다. 개의 뇌전증(간질)이 어떻게 유전적으로 전이되는지 알기 위해 카드에 기호를 넣어 설명하다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게임은 두뇌집단인 멘사 회원들이 뽑은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결국 팔코는 이 게임을 기반으로 1991년 셋엔터 프라이즈(Set Enterprises)란 보드게임 제작사를 설립,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게임은 4가지 유형의 81개의 카드로 이뤄져 있는데 각 유형별로 3가지의 특징이 있다. 숫자(1, 2, 3), 모양(다이아몬드, 물결, 타원), 음영(채워진 것, 빗금, 채워지지 않은 것), 그리고 색(빨간색, 녹색, 보라색) 등이 각각 다른 것이다. 이에 따라 모두 81개의 카드가 생성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딜러가 잘 섞어 놓은 81개의 카드에서 12개를 늘어 놓는다. 세 장의 카드가 4개의 각 유형에 대하여 모두 같은 특징을 갖

거나 또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질 때, 이 세 카드를 ‘세트’라고 한다. 이런 세트를 먼저 찾는 사람이 세장의 카드를 가져간다. 딜러는 다시 세 장의 카드를 추가한다. 더 이상 추가할 카드가 없을 때까지 게임을 진행하며 가장 많은 세트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

다음 왼쪽 세 장의 카드는 세트다. 숫자 유형에서 1, 2, 3 규칙이 있고 모양과 음영, 색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오른쪽 9개 카드는 마방진 형태의 세트를 보여준다. 가로, 세로, 두 대각선에 나타나는 세 개의 카드를 모으면 총 8개의 세트를 이룬다.

여기에 숨겨진 수학은 도블과 비슷하다. 아무거나 카드 두 장을 선택하면 세트를 만족시키는 나머지 한 장의 카드가 어딘가에 있다. 이것은‘ 81차 스타이너 삼중계(Steiner triple system of order 81)’에 해당한다. 이런 삼중계가 복잡한 수학을 쓰지 않고 도형의 조합으로 간단히 얻어진다는 게 흥미롭다.

지금까지 카드 게임에 숨겨진 수학적 개념에 관해 알아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보드게임이지만 그 원리는 심오한 수학에 기반을 뒀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수학은 원래 세계를 설명하려는 언어이자 인간의 이성을 훈련하는 언어이다. 이성의 훈련과 감성적 재미를 동시에 유발하는 수학적 교육 방법의 부재가 아쉽다.

요즘 우리 자녀들은 스마트폰 게임이나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바둑, 장

기, 오목, 윷놀이, 포커 등의 보드게임에 익숙해 있다. 이런 게임은 논리적 추론, 확률의 계산, 전략 분석 등을 요구한다. 자녀의 수학적 두뇌를 개발시키고 싶다면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수학 개념을 접목한 보드게임에 아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준말)’ 문제는 단순히 어려운 몇 개의 수학 개념을 교과서에서 제외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수

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허물고 수학과 친해질 수 있는 교육 방법의 활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온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 도블이나 세트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자녀는 수학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가면 다양한 마블게임을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는‘ 모노폴리 공원(Monopoly in the Park)’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건전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파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김종락 서강대 수학과 교수